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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가 되고싶은 달걀들에게

[2022 여름 특별호] 아마존 인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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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 글에서는 제가 태어나서 처음 회사에서 일해본 경험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2022년 여름 아마존에서 PhD 인턴을 했고, 그로부터 반년이 지난 시점에 쓴 글입니다. 박사과정중인 동료 학생분들, 그리고 CS 박사과정을 생각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미국의 컴퓨터 사이언스 박사과정 학생들은 여름방학에 산업체에서 인턴을 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학계와 산업계가 밀접히 연관된 학문인 만큼 인턴십을 통해 연구를 할 수 있는 경우도 종종 있고, 인턴을 한 뒤 졸업 후 리턴 오퍼를 받아 취직을 하기도 한다. 또, 인턴을 하면 학교에서 받는 월급(stipend)과는 비교도 안 되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인턴쉽에서 한 일이 학위논문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 인턴한 시간만큼 졸업이 늦어지는 단점이 있다. 인턴이 많이 받아 봤자 박사 졸업 후 벌 수 있는 돈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기에, 빨리 졸업하고 진짜 돈을 버는 것이 이익이라는 견해도 있다.

내 주변에는 매 여름마다 인턴을 한 친구도 있고, 한 번도 인턴 하지 않고 졸업한 친구도 있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적어도 한 번 정도는 박사과정 중 인턴을 하고 졸업하는 듯하다. 미국인의 경우 아무런 비자 제한 없이 지도교수와 학교의 허락만 있으면 언제든 얼마든 인턴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나같은 인터네셔널 학생들은 인턴을 하는 데에도 제한이 있다. 일단, 인턴을 하기 위한 비자 CPT는 총 1년까지만 쓸 수 있고 (정확히 말해서 1년 이상 쓰면 졸업 후 OPT를 쓸 수 없기에 1년 미만으로 쓰는 게 좋다), 학교 자체적으로 두 번 혹은 네 번 따위의 횟수 제한을 걸기도 한다. 가끔 논문이 너무나도 필요한 교수님들은 학생들이 여름에 회사에서 인턴 경험을 쌓는 것보다 자기와 함께 논문을 쓰길 원하기도 하지만, 본인들도 제자가 졸업 후 좋은 회사에 문제 없이 취직하길 원하므로 한두번의 인턴십은 대부분 허락하는 분위기다.

테크 회사에서 CS PhD 학생이 하게 될 인턴십은 크게 두 갈래인데, 엔지니어링(engineering)과 연구(research) 인턴이다. 엔지니어링 인턴은 실제로 프로덕트 개발에 참여하는 인턴이다. (물론 진짜 프로덕션까지 이어지지 못할 수는 있다..) 현업에서 어떤 프로세스로 개발을 하는지 배울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안해봐서 모른다..) 연구 인턴은 말 그대로 연구를 하는 팀에서 연구를 하는 인턴이다. 보통 작게라도 논문을 쓰는 것이 목표가 된다. 내 지도교수는 연구를 하는 인턴이라면 뭐든 허락해 주었다. 그의 조건은 "does this help you write your thesis?” 였다. 그래서 나는 연구 인턴을 찾아야만 했다.



2021년 겨울, 학과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데 이미 내년 여름 인턴십 리크루팅을 시작했다며 빨리 지원하라는 말을 들었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그날 저녁 구글 인턴십에 지원했다. 지원 서류는 딱히 거창하지 않다. 내 기본 인적 정보와 CV를 첨부해 제출하면 된다. 그런데 나중에서야 구글에 일하고 있는 친구가 있을 경우 리퍼럴을 받을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고, 어찌저찌 다시 리퍼럴을 받아 인턴십에 지원했다. 구글은 연구 인턴은 3년차 이상만 받는다고 명시해 놓았고, 엔지니어링보다 연구에 더 관심이 있었지만 구글이라는 브랜드가치에 눈이 먼 나는 엔지니어링 트랙 인턴에 지원했다. 엔지니어링 관련 경험이 적은 나는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곧 구글에서 인터뷰를 하자는 연락이 왔다.

인터뷰는 두 번에 걸쳐 진행되는데, 둘 다 technical interview 였다. (FYI, technical interview의 반대쯤 되는 인터뷰는 behavioral interview고 장점이 뭡니까? 같은걸 물어보는 인터뷰다. Full time employee를 뽑을 땐 behavioral interview도 포함된다.) Technical interview란 쉽게 말해 Leetcode 같은 사이트에 공유되는 알고리즘 문제를 풀어내는 인터뷰다. 보통 문제는 일부러 대충 주어주고,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더 자세한 정보를 스스로 직접 물어보게 만든다. 예를 들어, "주어진 맵에서 길을 찾는 코드를 짜 봐" 같은 질문이 주어진다. 그리고는 이 맵은 얼마나 큰지, 맵의 가장자리는 막혀있는건지, 대각선으로 이동할 수 있는지 등의 자세한 정보는 알려주지 않고 지원자가 어디까지 생각할 수 있는지 평가한다. 그리고 물론 적절한 알고리즘을 잘 찾아내는지, 그 때 시간복잡도나 공간복잡도 (Big-O analysis) 분석을 할 수 있는지도 평가한다. 처음엔 기초 질문으로 시작해서, 문제를 빨리 풀면 조금 더 심화된 새끼문제(?)도 나온다. 구글은 한 번의 인터뷰에 45분을 주었고, 나는 공교롭게도 두 번의 인터뷰를 연이어 봐서 중간에 15분의 휴식시간을 가졌다. 첫 인터뷰는 생각보다 쉽게 풀어서 남은 새끼문제가 하나도 없을 때까지 막힘없이 진행됐다. 그러나 15분 휴식 후 진행된 두 번째 인터뷰는 처음부터 조금 삐걱거렸고, 결국 며칠 뒤 "다음 단계로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전화를 구글로부터 받게 되었다. 이 얼마나 구글스러운 표현인지.

그러다 학회에서 인연을 맺은 한 언니가 아마존 리서치로 이직을 했다면서, 나에게 인턴십에 지원해보라고 링크를 전달해 주었다. 나는 얼마나 인턴쉽이 해보고 싶었으면 또 급하게 준비해서 번갯불에 콩볶아먹듯 내 CV를 제출했다. 그러나 몇 주 뒤, 언니네 팀에서 인턴 TO를 받지 못해 날 뽑아주지 못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아 안되겠구나 하고 포기할 때 쯤에 아마존에서 인터뷰를 하자는 연락이 왔다. 지난 구글 인터뷰 준비를 위해 Leetcode 연습문제를 일주일 정도 풀어본 것이 전부인 나는 어짜피 내 실력은 단기간 안에 바뀔 수 있는게 아니라는 생각에 가벼운 마음으로 한 주말 정도만 더 technical interview 준비에 투자했다. 아마존도 두 번의 인터뷰가 있었고, 각 인터뷰는 45-60분 진행될 수 있으니 60분을 빼놓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아마존은 몇가지 behavioral questions를 묻고, 30분 정도를 technical interview에 사용했다. 인터뷰는 순조롭게 진행됐고, 엔지니어링 인턴이 아닌 연구 인턴 포지션이어서 그런지 technical interview 질문이 구글보다 더 쉬운 편이었다. 그러나 추가적으로 내 연구나 기본적인 수학/통계 지식에 대해 질문하기도 했다.

이렇게 인턴쉽은 하고싶어 죽겠는데 기회는 잡히지 않는 듯 보이던 3월 초 즈음, 갑자기 내게 복이 터졌다. 아마존에서 첫 인터뷰를 마치고 두 번째 인터뷰를 준비중인 때에, 갑자기 학교에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던 회사에서 인턴십 오퍼를 내준 것이다. 작년엔 그렇게 인턴 시켜달라 해도 꿈쩍도 안 하더니... 쯧! 나는 아마존에게 약간 콧대높은 척을 하며, 다른 오퍼를 받았는데 다음 주까지 결정해야 하니 내게 오퍼를 줄 거라면 빨리 달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그리고 일주일 뒤 아마존으로부터 오퍼를 받았다.

그렇게 나는 나를 뽑은 네트워킹 팀 사람들과 미팅을 하면서 project fit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 때, 내 지도교수님이 아마존 AWS의 다른 리서치 팀으로부터 인턴을 추천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나를 연결해 주었다. AWS의 팀은 프라이버시 관련 리서치를 하는데, 다른 학교에 있는 내 분야의 대가 교수님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매력적인 기회였다. 나는 이미 날 뽑아주었던 네트워킹 팀 사람들에게 모든 이야기를 빠짐없이 공유하고, 프라이버시 팀 매니저와 미팅을 잡았다. 두 프로젝트 모두 어떤 내용인지 알아보고, 날 가장 가슴뛰게 하는 프로젝트에 내 여름을 쓰고싶다고 하니 두 팀 모두 내 욕심을 이해해 주었다. 결국 나는 프라이버시 팀으로부터 오퍼를 받게 되었고, 매니저가 1) 전직 교수이고, 2) 여성이고, 3) 논문을 꼭 쓰고싶어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프라이버시 팀을 선택했다.

분명히 이제까지 거절만 당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세 개의 오퍼를 가지고 고민하는 순간이 내 인생에 생기다니 너무나도 황송했다. 거절을 당한 경험은 너무나도 많지만, 내가 거절할 일은 극히 적었기에 어떻게 politely decline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결국 가장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쉬웠다. 내가 하고싶은 일, 인턴쉽을 통해 얻고싶은 것을 명확히 정리하니 내 욕심에 대해 떳떳하게 설명하고, 다음에 어디선가 또 마주치면 그때 더 잘 해보자는 훈훈한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여름이 되었고, 나는 아마존으로부터 커다란 소포를 받았다. 코로나 때문에 work from home (WFH) 근무환경이 이어지니, 아예 커다란 모니터를 내 집으로 배송해 주었다. 그리고 새삥 맥북을 받아 security key 같은걸 쓰니 내가 제법 중요한 일을 하는 회사원 같아보였다. 우리 팀은 뉴욕 오피스에 있지만, 사실상 아무도 회사에 나오지 않아서 나는 회사에 가도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아마존 오피스는 뉴욕의 한인타운과 가까이 위치해 있어서 나는 저녁에 친구들과 약속이 있을 때 정도만 회사에 갔다. 구글이나 트위터, 메타같은 회사들은 회사에서 밥도 주고 마사지도 해주는 천국으로 만들어두는 전략을 취하는데, 아마존은 회사에서 밥도 안 주고 바나나만 주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심지어 뉴욕 오피스는 바나나도 안 준다. 그러니 더욱더 회사에 갈 이유가 없었다. 아, 게임룸에 포켓폴이 있어서 그거 치러 친구들을 데리고 몇 번 가기는 했다.

아마존에서 일하는 것은 천국 같았다. 가장 멋졌던 점은 여러 학교에 걸쳐 있는 Amazon scholar 교수님들과 1대1 미팅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학교에는 내 지도교수님이 거의 유일한 프라이버시 교수님인데, 아마존에서는 프라이버시를 연구하는 교수님들이 대여섯명 더 있었다. 그들과 그룹 미팅을 할 때면, 그들이 서로 주고받는 대화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희열을 느꼈다. 나는 주어진 연구 주제에 관련된 논문을 찾아 읽고 공부하고, 어떻게 더 발전시킬지 고민하고, 수학 조금 코딩 조금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똑같은 일을 학교에서는 겨우 생활비 정도만 받으며 하고 있었는데, 아마존은 진짜 저금할 수 있는 돈을 주며 훨씬 덜 빡센 일을 시키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주어진 주제마저 없고 내가 찾아야 하지 않은가...! 직장인이란 이렇게 행복한 걸까 고민하기 시작할 즈음에, 기다렸다는 듯 날 괴롭히는 사람이 생겼다.

슈레기(익명)는 나와 같은 팀에서 같은 매니저 아래 일하고 있는 동료이다. 직급도 같고, 역할도 같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그는 이미 박사를 졸업하고 full time으로 고용된 직원이며, 나는 아직 박사과정 중인 인턴 나부랭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 틀려도 이제 배우면 되고, 돈도 덜 받으니 책임감도 그만큼 덜 느낀다. 그런데 이 슈레기가 매니저 앞에서 나를 찍어누르고 자신을 증명해보이려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내 발표자료에 자꾸 중요하지 않은 부분에 집착해 토를 달고, 내 코드를 마치 자신이 다 쓴 것처럼 말하고, 어떻게 해서든 이기려고 했다. 대체 인턴이랑 싸워서 뭘 얻어가려고 하는건지...

학교에 다닐 때에는 조모임에서 흔히 말하는 "프리라이더"들이 골칫거리였다. 결국 아쉬운 놈이 한다고, 나는 멘탈관리를 위해 이 모든게 내가 혼자 감당해야 할 프로젝트인데, 조원들이 도와주는 거라고 최면을 걸었다. 그렇게 마음가짐을 바꾸면, 방해만 안 한다면 조금이라도 도와주는 프리라이더도 예뻐 보였다. 그런데 회사에 오니 오히려 내 것까지 뺏어가려는 탐욕스러운 놈들이 득실거렸다. 아마도 슈레기는 약과였을 것이다. 나는 최대한 슈레기를 통하지 않고 직접 매니저나 다른 교수님들과 협업하는 방법으로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인턴십을 마치고 2주정도 휴식을 가졌다. 그리고 가을에는 인턴십 프로젝트 결과를 정리해서 학회에 포스터 발표도 했고, 얼마 전에는 full paper로 정리해서 제출했다. (아직 accept 발표는 나지 않았다.) 인턴십은 충분히 재미있고, 추천할만한 도전이다. 혹여나 슈레기들 속에서 있더라도, 그 회사가 나와는 맞지 않는 곳이라는 것을 알아내는 데 쓰는 3개월은 아깝지 않을 것이다. Last but not lease importantly, 돈을 벌어보는 경험은 여러모로 중요하다. 학비를 내며 다니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돈을 벌지도 못하는 제로썸의 이공계 대학원 생활에서, 경제감각을 배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