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개발자가 되고싶은 달걀들에게

[2023 봄 특별호] 구글 엑스 한 달 체험기

반응형

구글에서 일을 시작한 지 약 두 달이 되었다. 파트타임으로 주 20시간만 일하고 있으니 실제로는 한 달 정도 일했다 해도 되겠다. 이 생생한 느낌이 바래기 전에, 지금 떠오르는 생각들을 더 자세히 공유하고자 구글 첫인상에 대해 끄적여본다.

첫 만남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구글이 아니라  X라는 회사에서 인턴을 하는 중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 직책은 인턴이 아니라 resident이다. 이게 뭐냐 하면, 보통 인턴은 여름 3개월 동안 비교적 짧게 이루어지는데, 레지던시는 조금 더 긴 기간 동안 (6개월~1년) 진행하고 졸업 후 리턴오퍼로 연계할 목적으로 진행한다. 정직원이 아니라는 것에서는 그저 조금 긴 인턴쉽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다만, 인턴이 맥심이면 레지던시는 T.O.P. 다. X에 대해서도 설명해야 하는데, X는 구글 내에서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다들 안된다고 하는 high risk but high return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회사다. 원래는 구글 아래 X라는 팀이었지만, 알파벳이 생기면서 X라는 회사로 분리되어 나왔다. 대중이 알만한 거라면 DeepMind 가 X의 포트폴리오가 되겠다. X는 프로젝트를 잘 성공시켜서 회사의 형태로 엑싯한다. 말하자면 X가 만드는 프로덕트는 회사다.

내가 X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미국에서 석사를 졸업하고 주어지는 OPT를 십분 활용하여 목돈을 좀 벌어보고자 (1년만 일해볼까?) 회사들을 서치하던 때이다. 회사 서칭은 대충 내가 졸업 후 절대 가지 않을 회사에 딱 1년만 가서 일하다가 올 생각으로 시작했으나, 결국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당시 유명하던 AI Residency 프로그램들을 기웃거렸다. (그리고 결국 박사로 바로 왔다..흑) 이제는 메타가 되어버린 페이스북, 구글, 마소 모두 자기 나름대로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고, 그러다가 Google AI Residency 와는 다른 X AI Residency를 찾아냈다. 당시엔 나도 X와 구글이 뭐가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는데 한참 걸렸는데... 내 첫인상은, X가 굉장히 cocky 해 보였다 ^^ 무슨 AI resident를 이미 박사학위가 있는 포닥 레벨만 받는다고 써져 있는데, 이 싸가지 없는 회사는 뭐지 하면서도 또 아 정말 저기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인간은 역시 모순 덩어리...

그렇게 내 아련한 사랑과 미움을 받은 X는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가고, 3년 즈음이 흘렀다. 작년 여름, 아마존 인턴십이 막 끝난걸 어떻게 알고, 헤드헌터들에게 연락이 왔다. 하나는 애플이었고, 하나는 X였다. X는 HR팀 직원이 링크드인으로 메시지를 보내왔는데, 처음엔 사실 믿지 못하고 사기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예의 바르게 답장한 뒤, 몇 번의 메시지가 오가고 나서 내가 제안했다. Can we move this conversation to email? 그리고 내 인박스에 someone@google.com으로부터 이메일이 날아오자 이게 진짜라고 믿게 됐다. 그렇게 인터뷰를 잡고, 몇 번의 화상 면접을 거치고 나니 내게 오퍼 레터가 왔다. 그들은 당장 시작해서 1년간 하자고 제안했지만, 아쉽게도 내 신분이 외국인 노동자/학생이라서 조율을 해야 했다. 무튼 결국 지금은 학기 중에 파트타임으로 레지던시를 진행 중이다.

 

첫 출장

그리고 지난주, 나는 X 오피스가 위치한 마운틴뷰에 일주일간 출장을 다녀왔다. 직접 가서 보고 느끼는 것은 확실히 내가 머릿속에 상상하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일주일 간 출장의 느낀 점은 바로 이거다.

구글은 직원이 오로지 일하는 데에만 신경 쓸 수 있게 모든 것을 투자한다.

나는 마운틴뷰에서 있던 일주일간 마치 내가 임원정도는 되는 듯한 대접을 받았다. 일단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오피스 빌딩이다. X 오피스는 쇼핑몰이었던 공간을 개조해서 만들었는데, X the moonshot factory라는 브랜드에 걸맞게 곳곳에 X shape과 공장 분위기의 디자인이 넘쳐났다. 이런 디테일에 환장하는 나로서는 애플 패키징을 뜯으며 환희를 느끼는 앱등이(네 접니다)처럼 즐거워했다. 또 하나는 입구에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로비의 3층까지 뻥 뚫린 천장이었다. 층 하나하나도 층고가 높아 open space 느낌이 물씬 났다. 이 건물을 봤을 때 나는 여기서 일하고 싶다, 아니 여기 사장 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어버렸다.

모든 구글 오피스가 그렇듯이 X 오피스도 아침, 점심, 저녁까지 제공하는 식당이 있다. 나는 약속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모든 끼니를 그곳에서 해결했다. 하루 종일 오늘 뭐 먹지 걱정하거나 밖에 밥을 사러 갔다 오는 데 시간을 전혀 소비하지 않았다. 영악한 구글은 저녁을 6시 반에 주는데, 그래서 결국 6시 반까지 일을 하게 되었으나 전혀 억울하지 않았다. 밥뿐만이 아니다. 회사에는 격주로 오는 이발소도 있었고, 꽤 나쁘지 않은 gym에다가 왜 이것까지 필요한가 싶지만 빨래 서비스도 있었다. 앗 깜빡했다 싶은 게 있다면 모든 것이 회사 안에서 해결 가능한 구조였다.

출장을 간 바로 다음 날, 나는 예정에 없던 생리를 시작했다. 그러나 두려울 것이 없었다. 회사 내 모든 화장실에는 생리대와 탐폰이 넘치도록 비치되어 있었다. 미리 준비해 오지 않았지만 이번 생리는 문제가 없었다. 모든 화장실에 구비되어 있었기에, 회사 안에서는 따로 탐폰을 챙겨서 들고 다닐 일도 없었다. 5성 호텔에서도 화장실에 생리대가 내 요구보다 먼저 존재한 적은 없었다. 물어보면 가져다주었지. 회사는 나의 모든 exceptional situation을 예상하고 미리 해결책을 마련해두었다. 다른 말로 풀어 설명해 보자면, 내가 일 하지 못할 핑곗거리를 단 하나도 남겨두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탐폰 그거 얼마나 한다고, 그거 사러 시급 비싼 직원이 밖에 나갔다 오는 시간과 그걸 다 미리 챙겨 다닐 여성들의 뇌 용량을 생각하면, 그들이 생리대 챙길 노력/시간에 회사 일 하나라도 더 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득일 것이다.

구글이 사원들을 일하도록 만드는 문화도 또한 새로웠다. 불필요한 경쟁을 권하지 않는 문화라고 느꼈다. 그렇다고 해서 경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고로 스트레스도 없는 것이 아니다.) 구글은 과정 속의 경쟁보다는, 결과로 보여주는 문화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그다지 신경 쓰지 않지만, 내 매니저와의 미팅에서 나는 내가 지난 일주일간 무엇을 하는데 시간을 썼는지 보여줘야만 한다. 그러니까 부하의 일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는 사람은 상사가 될 수 없고, 반대로 그 이해가 있기 때문에 내가 일하는 동안에는 비교적 자유롭게 일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문화도 communication cost를 줄이려는 구글의 노력이 아니었을까?



첫 직장

이렇게 말하면 아마존이 조금 섭섭해 할 수 있겠지만, 아마존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그게 직장이라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았다. 아마도 하는 일이 대학원생으로써 해야 하는 일과 별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X의 일은 조금 달랐다. 내게 주어진 문제는 굉장히 애매모호했고 (그들은 일부러 그렇게 줬다고 주장한다. 아마 그들도 정확히 원하는 게 뭔지 잘 몰랐던 것 같다.) 팀에서 머신러닝(혹은 그런 비슷한 것)을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raw data가 주어지고, 거기서 나는 의미를 찾아내고, 상황에 맞게 필요한 모델을 설계해야 했다.

출장 가 있는 동안 많은 팀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으로 직접 만나는 자리였으니 인사나 하고 끝날 수도 있었지만, 나는 디자인 연구를 하던 때로 돌아가 user research를 하고 있었다. 내가 만들게 될 프로덕트는 이제 제품이 아니라 machine learning model이었고, user는 팀원들이었다. 이런 모델이 있으면 너의 job을 하는데 유용할지, 이게 왜 유용한지, 또 뭐가 있으면 좋겠는지... 사용자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듯, 팀원들도 그들에게 필요한 모델이 무엇인지 모른다. 나는 그들에게 진짜 필요한 모델이 뭔지, 그걸 train 하기 위한 데이터는 있는지, input/output이 어떻게 설정되어야 유용할지 등을 찾아가는 사람이었다. 그걸 다 찾아서 아주 좁은 의미의 problem statement를 완성하면, 비로소 그 때야 LSTM이니 CNN이니 하는 전문적인 내용을 거들떠볼 때가 되는 것이다.

출장 마지막 날 매니저와 함께 점심을 먹는데 그가 내게 이렇게 물었다. 너의 역할이 무엇인 것 같아? 아니, 네가 뽑아놓고 그런 질문을 하다니..?라는 생각을 찰나동안 했지만 나는 윗 문단에서 설명한 것이 내 역할인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기뻐하게 내게 이렇게 말했다. 왜 구글에서 일해야 하는지, 너의 unique role 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고 하려고 했다고. 그런데 너는 그걸 이미 찾은 것 같다고 했다. 다른 머신 러닝 엔지니어들이 어떻게 일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조금 비슷하고 또 조금 다르리라 생각한다. 앞으로 X에서 보내게 될 시간 동안 오늘 적은 이 생각에서 얼마나 더 성장할지, 혹은 달라질지 모르겠다. 다만 그 시간이 아주 재미있을 것 같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