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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CS 유학 준비

미국 CS 유학 준비 3편: 학점과 연구실적, 뭐가 더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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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난 두 편에서는 영어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어요. 이번 편에서는 연구 내용에 더 직접적으로 관련된 학점과 연구실적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개인적으로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받는 질문 중에서 가장 답하기 어려운 부분은 "학점/연구실적이 얼마나 좋아야 하느냐"는 질문입니다. 그나마 동일한 기관에서 평가하여 하나의 숫자로 환산되는 TOEFL, GRE 점수는 몇 점 정도면 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물론 그것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지만), 연구실적은 논문 1개, 2개 등으로 정량화되어 평가되기 어렵습니다. 학점 또한 언뜻 보기에는 정량화된 점수 같지만, 학교마다 학과마다 기준이 꽤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딱 하나의 원칙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모든 원서 평가에 적용되는 단 하나의 골든룰을 바로, "뽑는 교수 입장에서 생각하기" 입니다. 이는 박사과정에 더 초점을 맞춘 표현이며, 석사과정은 "교수"가 "학과"로 치환될 뿐입니다. 학과가 추구하는 바와 교수가 추구하는 바는 근본적으로 비슷한데, 학과는 전체적으로 커다란 룰만 존재하는 반면에 교수는 내가 일하고 싶은 교수의 성향과 연구분야에 따라 디테일을 더 예측해볼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럼, 학과는 어떤 학생을 원할까요? 일단 최소한을 보자면 학교에 와서 무리 없이 학업을 완수하고 졸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학생이어야 합니다. 능력뿐만 아니라 중간에 좀 어려운 일이 생겨도 포기하지 않을 의지와 열정도 필요하겠죠. 여기서 욕심을 더 부리자면, 졸업 후 탄탄대로를 걸어서 학교의 명성을 드높여줄 학생을 찾을 것입니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학교는 (석사)학위를 팔아 돈을 버는 기관이기도 하니까 tuition을 문제없이 잘 낼 수 있는 학생을 찾기도 하겠죠...

연구석사 혹은 박사과정 학생을 뽑는 교수의 마음은 어떨까요? 기본적으로 학과의 마음가짐과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은 학생과 자신의 fit을 더 신경 쓰게 되겠죠. 이 친구는 어떤 연구에 왜 관심이 있으며, 이는 나의 커다란 연구 방향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보고 싶을 겁니다. 특히 박사과정 학생이라면, 지금 관심 있는 하나의 연구주제보다는 이 학생의 연구 철학을 보고, 나중에 연구 관심사가 좀 바뀌더라도 교수 자신의 연구 관심사와 겹쳐질 수 있는 학생을 찾고 싶겠죠. 여러 분야가 함께 연구하는, interdisciplinary한 학문일수록 본인의 연구실에 이 학생이 기여할 수 있는 바가 무엇인지가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예를 들어, CS 출신 교수님이 운영하는 HCI(human-computer interaction) 연구실이라면, human centered design, human factors, psychology, cognitive science 등 다른 분야에 노출되었던 경험을 높이 살 것입니다. (본인에게 없는 능력을 학생이 가져와줄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CS 지식이 완전히 없는 것은 또 안 됩니다. 제가 생각하는 최소한은, 이미 할 줄 모르는다면 "더 어려운 것을 배울 능력, potential"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지난 두 편에서 살펴본 TOEFL과 GRE 점수가 무엇을 체크하려던 것인지, 그래서 왜 비교적 덜 중요한 것인지 더 공감이 되시리라 믿어요. 더군다나 요새 이러한 영어점수는 영어 실력을 측정하는 noisy한 방법일 뿐이라는 인상이 더욱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그럼 학점과 연구실적은 무엇을 보기 위해 제출하라는 것이며, 얼마나 어떻게 중요한 항목인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학점이 얼마나 좋아야 !@#$%^& 가요?

질문이 이렇게 나오면 저는 할 말을 잃습니다. 무엇을 기대했나 닝겐 당연히 높높익선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질문을 조금 바꿔보도록 하죠. 학점을 왜 볼까요? 높은 학점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학점이 성실함을 보여주는 척도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학부 학점은 보통 4년(8학기)이라는 긴 기간 동안 측정되는 값이기 때문에 한 번 열심히 하거나 한 번 놀았다고 변동하기 어려운 값입니다. 또, 학점은 작게나마 나의 열정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공부를 열심히 했고, 그래서 높은 학점까지 받았다는 것은 그저 맨입으로 "나는 이 분야에 관심이 있다"는 것보다 더 신뢰가 가겠죠. 요즘 대세라는 "AI"를 연구하는 연구실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김전산 학생은 CS 전공이지만 AI 관련 수업은 하나도 듣지 않았거나, 들었는데 학점이 C입니다. 반면에 이철학 학생은 언뜻 CS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철학과 학생이지만, 예전부터 AI에 엄청난 관심이 있었고 AI 관련 수업에서도 A를 받고 이러저러한 세미나도 들었습니다. 김전산 학생과 이철학 학생이 동시에 AI 연구실에 지원했다면, 교수는 누구의 원서에 더 관심이 갈까요? 분명 이철학 학생일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학점이 전달하는 가장 강력한 정보는 이 분야의 배경지식을 잘 습득했다는 것입니다. 배경지식을 잘 습득한 것이 왜 중요할까요? 저는 이것이 연구에서 발휘하는 창의력과 관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창의력은 무엇이 타당하고 타당하지 않은 방향인지 추론하는데에서 기인합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은 어떠한 기반에서만 유효한 것인지, 그렇다면 그러한 전제조건들이 바뀔 경우 어떤 현상이 일어날지 상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미 있는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끊임없이 의심하며 새로운 방향을 개척해나가는 것이 연구이기에, 연구의 창의력은 백지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메타 레벨의 사고력을 키워야 하고, 그 바탕은 이미 있는 이론들을 습득함으로써 다져질 수 있습니다.

남이 만들어낸 것을 습득하는 공부와 내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는 연구는 분명 다르지만, 연구의 바탕이 지식을 습득하는 데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이해했다면 교수가 왜 학점이 높은 학생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지 공감하실 거예요. 연구의 시작은 literature review 인 것도 이제 좀 당연해 보이죠? 하지만 학점은 어디까지나 연구능력을 가늠하게 하는 proxy일 뿐입니다. 따라서,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연구성과가 있다면, 학점은 덜 중요해집니다. 그러므로 아직 뚜렷한 연구성과가 있기 힘든 학부 졸업생들에게는 상대적으로 학점이 더 중요해질 것이고, 최소한 학위논문은 써야 했을 석사 졸업생들에게는 연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항간에 떠도는 소문 중에서는 "학점 4.0 넘지 않으면 TOP5는 절대 안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변종도 다양해서 학점이 4.1이 될 때도 있고, 학교 컷이 TOP10이 될 때도 있습니다. 학점 기준은 학교마다 다르기 때문에 4.3 만점, 4.5 만점, 혹은 5.0 만점인 학교도 존재합니다. 그리고 TOP 5, 10 같은 서열(?)도 분야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얼마나 부정확한 문장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신뢰도가 바닥까지 떨어졌지만, 이런 말을 들으면 괜히 4.0이 넘지 않는 내 성적표가 부끄럽고 움츠려 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 시리즈 끝까지 주장할 텐데, 원서 평가는 무조건 case by case 이므로, 나는 학점 4.0 안되니까...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원하는 학교에 원서조차 넣지 않는 실수는 범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겨울날 길 건너편에서 바라본 Building 7, photo credit: https://www.flickr.com/photos/namlhots/5484492086

 

꼭 1저자 페이퍼가 있어야 하나요?

학부 연구생 경험이 있거나 석사를 이미 하고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이제 페이퍼 개수에 매달리게 됩니다. 페이퍼의 종류는 크게 학회(conference) 페이퍼와 저널(journal) 페이퍼가 있는데, CS와 같이 지식의 순환이 빠르게 돌아가는 학계의 경우 저널보다 학회 페이퍼가 주가 됩니다. (학회 페이퍼의 accept rate도 그만큼 낮습니다.) 1저자 페이퍼란 출판된 논문에 기재된 저자 이름 순서에서 내 이름이 맨 앞에 들어간 페이퍼를 의미합니다. 1저자라는 의미는 이 연구에서 가장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했고, 가장 주도적으로 진행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논문이 몇 개 있어야 하는지, 꼭 1저자 페이퍼가 있어야 하는지 등의 질문은 "학점이 몇 점이어야 하느냐"는 질문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습니다. 논문은 많이 있으면 있을수록 좋고, 1저자 페이퍼도 없는 것 보다야 있는 것이 훨씬 좋지 않겠어요? 그러니 이번에도 질문을 조금 바꿔서 나의 연구실적으로 교수에게 무엇을 어필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교수는 연구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는 학생을 연구가 뭔지 아예 모르는 학생보다 선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잘 쌓은 배경지식은 연구하기 좋은 토양을 가꾼 것이지만, 그 토양에 연구의 씨앗을 어떻게 심고 어떻게 물을 주고 가꿔야 하는지는 또 완전히 다른 이야깁니다. 아무리 좋은 토양을 가꾼 학생일지라 해도, 연구하는 방법을 모르거나 연구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학생을 뽑는다면, 이제 교수는 이 학생이 과연 연구자의 성향인지부터 도박을 시작해야 하겠죠. 그러니 1저자가 아니더라도 조금이나마 연구 경험이 있다면, 자신이 그 연구를 수행함에 있어서 어디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명확하게 서술하면 됩니다.

학위 연구나 1저자 논문이 있다면, 연구의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이클을 본인이 책임자가 되어 진행시켜봤다는 뜻이기 때문에 교수의 번뜩이는 눈에 콕하고 꽂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학회나 저널에 억셉된 페이퍼가 있다면, 교내 커미티 몇 명에게 확인받는 학위 연구 논문 심사 절차보다 더 까다로운 심사과정을 거쳐 검증된 연구결과라는 뜻이므로 더 큰 인상을 남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회나 저널에 억셉된 페이퍼가 아니더라도, 학위 연구 내용이 있다면 그 요약본을 제출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학위 연구 내용으로 출판된 페이퍼가 있다면 필요 없겠죠.) 아무도 읽지 않는 100페이지짜리 석사학위 논문 통째로 내지 말고, 학회지 형식으로 6~8페이지 요약해서 첨부하면 설령 그것이 아직 출판되지 않았어도 당신이 연구한 내용과 방법과 열정을 교수에게 슬쩍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writing sample 같은 것을 제출할 수 있게 허용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학위논문 요약본이라고 해서 첨부하면 다들 받아줄 것입니다.)

그러나, 작고 귀여운 학부생은 사실 학위논문도 연구경험도 아예 없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당신이 아직 졸업 전이라면, 어서 달려가서 이 운명을 바꿀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이미 졸업해버렸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한 경우에는 sop(statement of purpose, 대충 자기소개서 비슷한 것)를 기깔나게 써주면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연구 실적이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있는 애들이 괴물인 것이니까 너무 자신감 잃지 마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래서 학부생에게 상대적으로 학점이 더 중요할 뿐입니다. 물론, 연구실적까지 있는 슈퍼 학부생이라면 당연히 학점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집니다. 당신이 참여한 연구의 가치와 그 연구에서 당신의 역할, 맡은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니까, 연구 기회를 잡았다면 마지막 학기 학점을 위해 연구를 소홀히 하는 것보다 연구에 더 신경 쓰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구구절절 설명했지만 그래서 결론은, 교수에게는 한 번이라도 전체적인 연구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경험해본 사람이 수업만 잘 들은 사람보다 안전빵이라는 것입니다.


 

어떤가요, 학점과 연구실적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이나마 풀렸나요?  본인의 입학 원서를 학생의 입장이 아니라 평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경험하셨길 바랍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관점을 유지할 거예요. 지금까지 다룬 공인 시험 점수, 학점, 연구실적은  여러분이 아주 일찍 유학을 결심하지 않은 이상 대부분 이미 결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좀 답답하고 후회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지요. 다음 편에서부터는 본격적인 유학준비를 시작하는 방법으로 넘어갈 예정입니다. 학교와 프로그램을 고르고, 장학금과 입학 원서에 필요한 문서들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곧 또 만나요!